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

최황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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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

최황

2020 ㅣ Color ㅣ Single Channel ㅣ 21‘10“ㅣ Edition 3/5



올림픽공원엔 1988 년부터 지금까지 꺼지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불이 있다. 나는 이 불을 끄려고 했다. 올림픽공원 측에 전화를 걸어 “가스 냄새가 납니다”라고 말해 스스로 이 쓸데없는 상징의 밸브를 잠그도록 만들 계획이었다. 그런데 그럴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. “미래를 비추는 불길로 영원할 것이다”라는 강렬한 문구가 새겨진 석판의 설명과는 달리 이 불은 지난 여름의 태풍 때 꺼져 있었다. 애초에 올림픽의 성화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신화적이면서 상징적인 성격을 거듭 재현해 올림픽 성화대에서 옮겨온 이 불은 중첩된 상징성이 동어반복을 일으키며 오리지널리티를 촌스럽게 태우고 있었던 것인데, 태풍 때문에 껐다 다시 켠 순간 그 촌스러움마저

사라져버렸다. 그렇게 꺼진 불을 다시 켜는 것이 얼마나 반복돼왔을까? 그렇게 이 기념비는 점멸하는 미래를 비추는 불길이 된 걸까?

 

올림픽대교는 주탑의 높이가 해발 88미터,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의 수가 24개로 1988년 24회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로 설계됐다. 주탑은 성화대 모양을 하고 있는데, 1990년 6월에 완공된 이 다리의 주탑 위에 불 모양의 조형물이 올라간 건 2001년이었다. 완공 후 10년이 지난 2000년 어느날 서울시 시의회 회의에 갑자기 조형물 설치 계획이 안건에 오르내린다. 당시 예산 편성을 하며 이 조형물 사업의 필요불급함을 이야기하던 한 시의원의 입에선 “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게 공중에 떠서 작업하세요”라는 말이 나온다. 이번 작업의 제목 <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>는 그 말에서 따왔다.

 

올림픽 대교를 걸어서 건너면 조형물을 설명하는 동판이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. 거기엔 “공모를 통해 선정했다”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, 당시 서울시 시의회 회의록에 처음 이 조형물에 대한 안건이 올라온 시기와 처음으로 조형물 설치 관련 기사가 나온 시기가 굉장히 가까운 점, 서울시에 작가 선정 방법이나 과정에 관한 공식문서를 정보공개 청구를 했을 때 부존재 통보된 점, 처음부터 조형물의 규모와 크기와 모양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기사가 나갔다는 점을 미루어 공모 자체가 없었다고 유추하고 있다.

 

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 조형물이 설치되던 2001년 5월 29일,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소속 양익헬기 시누크기가 추락했다는 것이다. 일단 서울시의 조형물 설치 작업에 군 헬기가 투입된 경위가 문제적이다. 이는 작가가 88미터 위에 설치될 조형물을 14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무게로 만든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. 이런 중량의 물건을 수송할 수 있는 헬기는 군용 시누크기 뿐이었다. 작가가 작업실에서 어떤 설치 과정도 고려하지 않고 작업한 결과 이 조형물 설치 작업은 군사작전이 되고 말았다. 안타깝게도 설치 당일 헬기 프로펠러가 조형물과 충돌했고, 그자리에서 기체는 수직으로 추락했다. 탑승 파일럿 둘과 승무원 한 명이 사망했다. 어디에도 이 사고와 사망자에 대해 언급하는 기념비는 없다. 이 황당한 사연들이 지시하는 곳은 다름아닌 동시대 한국사회다.

 

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질문한다. 20년이 지났는데, 한국사회에서 공공미술을 다루는 태도는 얼마나 달라져 있나? 그리고 이 전시를 통해 미술의 공공적 가치가 구현되는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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본 전시는 < 2020년 청년예술청 작품(미디어·영상) 구매사업 >을 통해 선정된 26점의 작품을 전시 및 상영하는 기획전시입니다.